2008년 04월 19일
촌지라...
왜 이밀리비트라고 하는지 알겠다...
난 인터넷에서 물어뜯을 듯이 싸우는, 일명 '키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키배를 한 적도, 당한 적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키보드가 부러져라 싸운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관련된 일이었다.
고2때 네이버 메인에 촌지 관련 기사가 올라왔고,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던 난 교원들을 향한 엄청난 악플에 당황했다.
'돈만 밝히는 것들' '진정한 선생은 없다' 등. 더 심한 것들도 물론 많았지만 굳이 적고 싶지 않다..;
그 당시엔 네이버측이 기사에 다는 악플에 대해 큰 제재를 하지 않던 시기라,
네이버 리플창 = 말 시궁창이라는 공식같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바보짓거리였지만, 당시로썬 매우 진지하게 이런 글을 썼다.
'저희 어머님은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릴 때 부터 교사들의 많은 면을 봐왔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제가 이러한, 그땐 나름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근데 그 글을 쓰자, 내게 동조하거나 날 옹호하는 댓글도 몇 몇 달렸지만 악플도 대여섯 개쯤 달린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내가 그렇게 옹호하려고 애썼던 어머니의 욕으로 이어지는 소름끼치는 악플들.
하나하나에 맞설 용기도, 입심도 없었기에 개중 매우 심한 것에만 반박했지만,
고2가 어설프게 반박하는 것과 저쪽의 무자비한 막말+쌍욕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댓글이 길어지자, 보다못한 몇 몇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어찌어찌 마무리 된 것은 기억난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고2씩이나 나이 먹은 주제에 펑펑 울었다 =_=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채 왜 우냐고 물으시고, 난 답하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펑펑 운 기억이 난다.
ㅡ
우리나라의 굉장히 많은 분들이 촌지를 보고 자라났고, 촌지의 유무에 따른 혜택과 불편함을 겪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난 중1부터 고3까지 단 한 번도 촌지에 관련된 에피소드에 관련된 적이 없다.
(초등학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 성격이라면 주셨을 리는 없다고 믿는다.)
설마 내가 향응과 촌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스승의 날, 또는 선생님의 생신. 음료수 세트나 중국산 달이는 녹차 세트등을 드린 것 까지 향응과 촌지라고 보는 걸까 ^^;
(물론 선물만 있었을 뿐, 현찰이나 상품권 등은 전혀 없었다)
촌지를 혐오하는 어머니와, 그 의견에 동의하시는 동료 교사분들.
그런 분들에 영향을 받고 크며, 평범한 여중과 국립인 여고를 나왔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에게도 들어본 적 없고, 학교나 학원에 떠도는 소문으로조차도 들은 적이 없는 촌지인데.
왜 날 제외한 세상 사람들은 거의 다 겪어봤을까.
..내가 운이 좋아서 촌지와 격리된 세상에서 자라난 거라고 보면 되는 걸까..
아니면 순수하거나 바보라서 모르고 자라난 걸까.
ㅡ
뱀다리.
올해 21세인 나,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투표가 대선이었다.
당시의 난 정치적 생각이 얕았던지라,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경제중시라는 이름 하에 어떤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난 내가 던진 그 표를 미칠듯이 후회하고 있다. -_-
뱀다리2.
이 나라는 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난 인터넷에서 물어뜯을 듯이 싸우는, 일명 '키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키배를 한 적도, 당한 적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키보드가 부러져라 싸운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관련된 일이었다.
고2때 네이버 메인에 촌지 관련 기사가 올라왔고,
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던 난 교원들을 향한 엄청난 악플에 당황했다.
'돈만 밝히는 것들' '진정한 선생은 없다' 등. 더 심한 것들도 물론 많았지만 굳이 적고 싶지 않다..;
그 당시엔 네이버측이 기사에 다는 악플에 대해 큰 제재를 하지 않던 시기라,
네이버 리플창 = 말 시궁창이라는 공식같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바보짓거리였지만, 당시로썬 매우 진지하게 이런 글을 썼다.
'저희 어머님은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어릴 때 부터 교사들의 많은 면을 봐왔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제가 이러한, 그땐 나름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근데 그 글을 쓰자, 내게 동조하거나 날 옹호하는 댓글도 몇 몇 달렸지만 악플도 대여섯 개쯤 달린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대부분이 내가 그렇게 옹호하려고 애썼던 어머니의 욕으로 이어지는 소름끼치는 악플들.
하나하나에 맞설 용기도, 입심도 없었기에 개중 매우 심한 것에만 반박했지만,
고2가 어설프게 반박하는 것과 저쪽의 무자비한 막말+쌍욕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댓글이 길어지자, 보다못한 몇 몇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줘서 어찌어찌 마무리 된 것은 기억난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고2씩이나 나이 먹은 주제에 펑펑 울었다 =_=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채 왜 우냐고 물으시고, 난 답하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펑펑 운 기억이 난다.
ㅡ
우리나라의 굉장히 많은 분들이 촌지를 보고 자라났고, 촌지의 유무에 따른 혜택과 불편함을 겪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난 중1부터 고3까지 단 한 번도 촌지에 관련된 에피소드에 관련된 적이 없다.
(초등학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 성격이라면 주셨을 리는 없다고 믿는다.)
설마 내가 향응과 촌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스승의 날, 또는 선생님의 생신. 음료수 세트나 중국산 달이는 녹차 세트등을 드린 것 까지 향응과 촌지라고 보는 걸까 ^^;
(물론 선물만 있었을 뿐, 현찰이나 상품권 등은 전혀 없었다)
촌지를 혐오하는 어머니와, 그 의견에 동의하시는 동료 교사분들.
그런 분들에 영향을 받고 크며, 평범한 여중과 국립인 여고를 나왔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에게도 들어본 적 없고, 학교나 학원에 떠도는 소문으로조차도 들은 적이 없는 촌지인데.
왜 날 제외한 세상 사람들은 거의 다 겪어봤을까.
..내가 운이 좋아서 촌지와 격리된 세상에서 자라난 거라고 보면 되는 걸까..
아니면 순수하거나 바보라서 모르고 자라난 걸까.
ㅡ
뱀다리.
올해 21세인 나,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투표가 대선이었다.
당시의 난 정치적 생각이 얕았던지라,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경제중시라는 이름 하에 어떤 사람을 뽑았다.
그리고 난 내가 던진 그 표를 미칠듯이 후회하고 있다. -_-
뱀다리2.
이 나라는 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 by | 2008/04/19 10:33 | 감정표현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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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요즘 뉴스 보고 있으면 한숨이 먼저 나옵니다;
"이 나라는 미쳤어..." 라던가;
은 어쨌든 링크 신고임 뿌우- 'ㅅ'
단지 우리나라는 해커=나쁜쉐이들 이란 편견이 있어 뒷동네에서 조용히 활동 하고 있지요(...)
이번 옥션 사건때문에 두개의 큰 집단이 직접 해킹 들어간다고는 합니다만(....)